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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많지만 《그래비티》는 조금 달랐다.
거대한 우주선이나 외계 생명체가 등장하는 영화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에 홀로 남겨진 한 사람이 어떻게든 지구로 돌아가려고 버티는 이야기다.

주인공 라이언 스톤 박사를 연기한 배우는 산드라 블록이다.
영화를 본 지 꽤 오래됐는데도 몇몇 장면은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 끝없이 펼쳐진 우주에서 혼자 빙글빙글 돌던 모습도 그렇지만, 나는 의외로 산드라 블록이 우주복을 벗고 우주선 안에서 떠 있던 모습도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
몸이 상당히 단단하고 근육질이라서 당시 영화를 보면서도 '운동을 정말 많이 했나 보다'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평범했던 우주 임무가 순식간에 재난으로
의료공학자인 라이언 스톤 박사는 우주왕복선 익스플로러호에서 자신의 첫 우주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함께 작업하던 사람 중에는 베테랑 우주비행사 맷 코왈스키도 있다.
처음에는 평온해 보였던 우주 작업이지만 갑자기 상황이 달라진다.
러시아 위성이 파괴되면서 발생한 우주 파편이 엄청난 속도로 지구 궤도를 돌기 시작한 것이다.
곧바로 임무를 중단하라는 지시가 내려오지만 이미 늦었다.
파편이 우주왕복선을 덮치면서 모든 것이 순식간에 망가진다.
스톤은 우주선에서 떨어져 나가 아무것도 잡을 수 없는 우주 공간으로 튕겨 나간다.
몸은 계속 회전하고 주변에는 붙잡을 것도 없다.
위도 아래도 없는 깜깜한 우주에서 지구만 멀리 보이는 장면은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힌다.
아무것도 없는 우주에 혼자 떠 있다는 공포
코왈스키는 가까스로 스톤을 찾아낸다.
두 사람은 파괴된 우주왕복선으로 돌아가지만 함께 임무를 수행했던 동료들은 이미 목숨을 잃은 상태다.
이제 두 사람은 국제우주정거장으로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우주에서는 작은 실수 하나도 치명적이다.
산소는 계속 줄어들고 추진 장치의 연료도 한정되어 있다.
겨우 국제우주정거장에 도착하지만 또다시 위기가 찾아온다.
스톤과 코왈스키가 우주정거장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면서 두 사람은 다시 우주로 튕겨 나갈 위험에 처한다.
결국 코왈스키는 스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연결하고 있던 줄을 놓는다.
스톤은 그가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우주복을 벗은 산드라 블록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
스톤은 가까스로 우주정거장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무거운 우주복을 벗는다.
극도의 긴장 속에서 겨우 안전한 공간에 들어온 스톤이 몸을 둥글게 웅크린 채 무중력 상태로 떠 있는 모습이 나온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다른 것도 눈에 들어왔다.
산드라 블록의 몸이 생각보다 굉장히 단단하고 근육질이었다.
마르고 가녀린 느낌보다는 군살 없이 탄탄하게 단련된 모습에 가까웠다.
우주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인물을 연기해서인지 그런 모습이 캐릭터와도 잘 어울렸다.
영화 제목이나 세세한 줄거리는 시간이 지나면 가물가물해지는데, 이상하게 이런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나에게 《그래비티》도 그런 영화 중 하나다.
살아야 할 이유를 잃어버렸던 스톤
스톤에게는 우주에서 벌어진 사고 말고도 마음속에 오래된 상처가 있다.
어린 딸을 사고로 잃은 뒤 삶에 대한 의욕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영화에서 스톤이 겪는 생존 과정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단순히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탈출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과정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스톤은 소유즈 우주선을 이용해 중국 우주정거장으로 이동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연료가 부족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빠지자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한다.
산소 공급을 줄이고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순간, 코왈스키가 우주선 안으로 들어오는 듯한 장면이 펼쳐진다.
하지만 실제 코왈스키가 돌아온 것은 아니다.
스톤이 만들어낸 환상에 가깝다.
그 환상을 통해 스톤은 자신이 아직 살아날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시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스톤은 소유즈의 착륙용 추진 장치를 이용해 중국 우주정거장 톈궁 쪽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그곳 역시 안전하지 않다.
우주정거장은 궤도를 잃고 지구 대기권으로 떨어지고 있다.
스톤은 마지막 희망인 선저우 우주선을 찾아 탑승한다.
이제 목표는 단 하나다.
지구로 돌아가는 것.
우주선은 대기권으로 진입하고 엄청난 열과 충격을 견디며 지구로 떨어진다.
착륙 캡슐은 바다에 떨어진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캡슐 안으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스톤은 다시 빠져나와야 한다.
우주복 때문에 몸이 무거워지자 장비를 벗어 던지고 간신히 물 위로 올라온다.
그리고 마침내 육지에 도착한다.
두 발로 땅을 밟는 마지막 장면
우주에서는 아주 작은 움직임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스톤이 마지막에는 자신의 손으로 흙을 만진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오랫동안 무중력 상태에 있었던 탓에 처음에는 제대로 서는 것조차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두 발로 땅을 딛고 일어선다.
나는 이 장면이 단순히 '우주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의미만은 아니라고 느꼈다.
딸을 잃은 뒤 삶의 의욕까지 잃었던 사람이 죽음과 몇 번이나 마주한 끝에 다시 살아가기로 선택한 순간처럼 보였다.
《그래비티》는 등장인물도 많지 않고 이야기도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우주에 혼자 남겨졌다는 설정 하나만으로 영화 내내 긴장감을 놓기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이상하게 기억나는 장면들이 있다.
끝없는 우주 공간에서 홀로 회전하던 스톤, 점점 멀어지던 코왈스키, 그리고 우주복을 벗었을 때 보였던 산드라 블록의 놀랄 만큼 탄탄했던 모습.
마지막에는 물에서 빠져나와 두 발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모습까지.
그래서 나에게 《그래비티》는 화려한 우주영화라기보다 죽음 바로 앞까지 갔던 한 사람이 다시 살기로 마음먹고 지구로 돌아오는 영화로 기억에 남아 있다.
영화를 떠올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끝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이다.
아주 멀리 떠나고, 길을 잃고, 때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져도 결국 우리는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찾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