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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펼쳐진 우주를 바라보고 있으면 인간은 정말 작은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고 나면 우주의 크기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이 있다. 바로 가족이다.

처음에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나는 우주 탐사 영화처럼 시작하지만, 끝까지 보고 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결국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은 살아남아야 하는 인류와 다시 만나고 싶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더 이상 농사짓기 어려워진 지구

가까운 미래의 지구는 심각한 환경 변화와 식량 부족을 겪고 있다.

거대한 모래폭풍이 수시로 마을을 덮치고 재배할 수 있는 작물도 하나둘 사라져 간다.

과거 NASA의 우주비행사이자 엔지니어였던 쿠퍼 역시 이제는 두 아이를 키우며 농사를 짓고 살아간다.

쿠퍼에게는 아들 톰과 딸 머피가 있다.

특히 머피는 자신의 방에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책장에서 책이 저절로 떨어지고 바닥에는 알 수 없는 모양의 먼지가 쌓인다.

처음에는 우연처럼 보였던 현상에서 쿠퍼는 일정한 규칙을 발견한다.

그것은 좌표였다.

쿠퍼와 머피는 그 좌표를 따라가고, 그곳에서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던 NASA 시설을 발견한다.

인류가 살아갈 새로운 행성을 찾아서

NASA는 이미 지구가 오래 버티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토성 근처에 나타난 웜홀을 통해 다른 은하로 탐사대를 보내고 있었다.

목표는 단 하나였다.

인류가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는 것.

앞서 떠난 탐사대가 보내온 자료를 바탕으로 몇 개의 후보 행성이 정해져 있었다.

NASA는 쿠퍼에게 우주선 엔듀런스호의 조종을 맡아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쿠퍼에게는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우주로 떠난다는 것은 어린 자녀들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특히 머피는 아버지가 떠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머피에게 아버지의 선택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한 임무라고 해도 어린 머피에게는 결국 아버지가 자신을 두고 떠난 것이었다.

쿠퍼가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지만 머피는 그 말을 믿기 어려웠고, 아버지가 떠난 뒤에도 오랫동안 그 상처와 원망을 품고 살아간다.

시간이 흐르면서 머피는 어른이 되지만 아버지를 향한 감정까지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주에 있는 쿠퍼에게 가족들의 영상 메시지가 도착하는 동안에도 머피는 오랫동안 자신의 모습을 보내지 않는다.

그만큼 어린 시절 자신을 두고 떠난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이 깊었다.

결국 제대로 된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쿠퍼는 우주로 떠난다.

우주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인터스텔라》에서 가장 인상적인 설정 가운데 하나는 시간이다.

쿠퍼 일행이 처음 도착한 밀러 행성은 거대한 블랙홀 가르강튀아 가까이에 있다.

이곳에서는 강한 중력 때문에 시간이 지구와 전혀 다르게 흐른다.

행성에서의 1시간이 지구의 약 7년에 해당한다.

탐사대는 잠깐 조사하고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거대한 파도와 예상하지 못한 사고 때문에 시간이 지체된다.

우주선으로 돌아왔을 때 지구에서는 이미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있었다.

쿠퍼는 그동안 도착한 가족들의 영상 메시지를 확인한다.

어린아이였던 아들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자신의 가정을 꾸렸고, 어린 딸이었던 머피 역시 성인이 되어 있었다.

쿠퍼는 화면 속에서 자신보다 빠르게 나이를 먹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시간이라는 것이 이렇게 잔인할 수도 있구나 싶었던 장면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인간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다음으로 향한 곳은 만 박사가 기다리고 있던 행성이다.

만 박사는 뛰어난 과학자였고 인류를 위해 홀로 먼 우주로 떠났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곳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행성이 아니었다.

혼자 죽는 것이 두려웠던 그는 구조받기 위해 거짓 신호를 보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 떠난 과학자조차 죽음 앞에서는 자신의 생존을 선택한 것이다.

이 장면은 우주라는 극한 환경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쿠퍼 일행은 또다시 큰 위기를 맞는다.

블랙홀 속으로 들어간 쿠퍼

연료가 부족해지면서 쿠퍼는 마지막 선택을 한다.

아멜리아 브랜드가 에드먼즈 행성으로 갈 수 있도록 자신이 탄 우주선을 분리한다.

그리고 쿠퍼는 로봇 타스와 함께 거대한 블랙홀 가르강튀아 속으로 떨어진다.

보통이라면 여기에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쿠퍼가 도착한 곳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과거 머피의 방을 볼 수 있게 된다.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순간이 동시에 펼쳐져 있는 듯한 공간이다.

그리고 쿠퍼는 깨닫는다.

어린 머피가 자신의 방에 유령이 있다고 생각했던 그 현상의 정체가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을.

머피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

쿠퍼는 과거의 머피에게 직접 말을 걸 수 없다.

대신 중력을 이용해 책을 떨어뜨리고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전에 머피가 해석했던 ‘STAY’라는 메시지 역시 쿠퍼가 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쿠퍼는 결국 머피가 가지고 있던 시계의 초침을 이용해 블랙홀에서 얻은 중요한 정보를 전달한다.

성인이 된 머피는 그 메시지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 정보를 이용해 인류가 지구를 떠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한다.

아버지가 우주로 떠난 뒤 평생 풀려고 했던 문제의 마지막 열쇠가 결국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다.

젊은 아버지와 늙은 딸의 재회

쿠퍼는 이후 토성 근처에서 구조되고 거대한 우주 거주 시설에서 눈을 뜬다.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보고 싶었던 딸 머피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 장면이 참 묘하다.

쿠퍼에게는 우주여행 동안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구에 남아 있던 머피에게는 평생에 가까운 세월이 지나 있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비교적 젊은 모습인데 어린 딸이었던 머피는 백발의 노인이 되어 병상에 누워 있다.

나는 《인터스텔라》의 복잡한 우주 이야기보다 오히려 이 장면이 더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영화 제목만 들었을 때는 바로 생각나지 않았는데, 젊은 아빠가 늙은 딸을 만나는 영화라고 생각하니 그제야 영화가 떠올랐다.

보통 부모와 자식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나이 든 부모 곁을 자식이 지키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완전히 반대다.

젊은 아버지가 자신보다 훨씬 늙어버린 딸을 바라보고 있다.

어린 딸을 두고 우주로 떠났던 아버지가 돌아와 노인이 된 딸을 만나는 모습은 SF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머피는 아버지에게 부모가 자식의 죽음을 지켜봐서는 안 된다는 말을 남기고, 홀로 새로운 행성에 가 있는 아멜리아를 찾아가라고 한다.

그리고 쿠퍼는 다시 우주선을 타고 떠난다.

우주영화인데 결국 가족 이야기였다

《인터스텔라》에는 블랙홀, 웜홀, 중력과 시간처럼 한 번 보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런 과학적인 내용보다 사람의 모습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우주에서 영상 메시지를 보며 눈물을 흘리던 쿠퍼.

어린 딸에게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떠났던 아버지.

그리고 평생 아버지를 기다리며 늙어버린 머피.

특히 마지막에 젊은 아버지와 노인이 된 딸이 마주 보는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잊기 어려운 장면 중 하나였다.

드디어 다시 만났는데 두 사람에게 흐른 시간은 너무나 달랐다.

그래도 《인터스텔라》는 완전히 절망적인 결말로 끝나지는 않는다.

아멜리아는 새로운 행성에 도착해 인류가 살아갈 새로운 터전을 준비하고 있고, 쿠퍼는 다시 우주선을 타고 그녀를 찾아 떠난다.

《인터스텔라》를 떠올리면 이제 거대한 블랙홀보다 먼저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젊은 아빠와 늙은 딸의 재회.

시간이 아무리 다르게 흘러도 서로를 잊지 않았던 아버지와 딸.

그래서 나에게 《인터스텔라》는 우주를 탐험하는 영화이면서 동시에 시간이 갈라놓았던 가족이 아주 오랜 세월 끝에 다시 만나는 이야기로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