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997년에 개봉한 영화 《볼케이노》는 로스앤젤레스 한복판에서 갑자기 화산이 폭발한다는 설정의 재난영화다.

화산이라고 하면 산꼭대기에서 용암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이 영화에서는 사람들이 매일 자동차를 타고 다니던 LA 도심 한가운데에서 땅이 갈라지고 용암이 솟아오른다.

주인공은 로스앤젤레스 비상관리국 책임자 마이크 로크다. 토미 리 존스가 마이크 로크를 연기했고, 앤 헤이시는 지질학자 에이미 반스로 출연했다.

오래전에 본 영화인데도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장면들이 있다.

신기하게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거대한 용암이 아니다.

회색빛 화산재가 도시를 뒤덮던 모습, 위험에 처한 아이 한 명을 끝까지 구하려던 사람들, 그리고 살 수 있었는데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동료 곁에 남았던 한 사람이다.

LA 한복판에서 화산이 폭발하다

영화 초반 LA에 지진이 발생한다.

처음에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지진처럼 보이지만 지하에서 이상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지질학자 에이미는 지하에서 화산 활동이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을 의심한다.

결국 라브레아 타르 피트 부근에서 화산이 분출하고 용암이 도심의 도로를 따라 흐르기 시작한다.

자동차가 다니던 길을 시뻘건 용암이 흘러가고 건물과 차량이 위험에 처한다.

마이크와 에이미를 비롯한 사람들은 용암을 막기 위해 도로에 장벽을 세우고 물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하철 터널을 따라 또 다른 용암이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 큰 위기가 시작된다.

정말 화산재가 저렇게까지 날릴까?

내가 《볼케이노》를 보면서 유난히 강하게 기억했던 것이 화산재였다.

도시 전체가 회색빛으로 변한다.

하늘에서는 마치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듯 화산재가 계속 떨어지고, 거리에도 자동차에도 사람들의 머리와 옷 위에도 회색 재가 내려앉는다.

그 모습이 당시 내 눈에는 정말 사실적으로 보였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까지 했다.

‘화산이 폭발하면 정말 화산재가 저 정도로 날리나?’

용암이 흘러가는 장면도 무서웠지만 나는 오히려 회색빛으로 변해가는 도시의 모습에서 재난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평소 사람들이 살아가던 도시가 순식간에 전혀 다른 세상처럼 변해버리는 모습이었다.

지하철에서 보여준 또 하나의 희생

영화에는 지금 다시 생각해도 강렬한 희생 장면이 하나 더 있다.

지하철이 사고를 당한 뒤 구조 작업이 벌어지는데, 스탠 올버는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기관사를 구하기 위해 다시 들어간다.

용암이 바로 앞까지 다가온 상황에서 그는 기관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재난영화에는 수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거대한 폭발보다 이런 한 사람의 선택이 더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한다.

병원을 살리기 위해 건물을 무너뜨리는 마지막 작전

후반부에는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지하를 따라 이동한 용암이 병원 쪽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이크는 용암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22층짜리 건물을 폭파해 거대한 장벽처럼 쓰는 계획을 세운다.

무너진 건물로 용암의 흐름을 바꿔 배수로 쪽으로 보내려는 것이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폭발물을 설치하고 사람들은 급히 빠져나와야 한다.

그런데 바로 이 장면에서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또 하나의 일이 벌어진다.

빠져나오지 못하는 동료, 그리고 혼자 나오지 않은 사람

마지막 폭발물을 설치하던 중 경찰 폭발물 처리반 대원 한 명이 잔해에 깔려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마이크의 동료 게이터 해리스는 그를 발견한다.

이제 곧 폭발할 것을 알고 있다.

혼자 빠져나온다면 자신은 살 수도 있다.

그런데 게이터는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을 혼자 남겨두고 나오지 않는다.

결국 두 사람은 마지막 폭발과 함께 희생된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라면 과연 저럴 수 있을까?’

살 수 있는 길이 눈앞에 있는데, 빠져나올 수 없는 동료를 혼자 죽게 내버려두지 않고 그 곁에 남을 수 있을까.

말로는 동료애를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이 걸린 순간에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그래서 내게는 이 짧은 장면이 거대한 화산 폭발 장면 못지않게 오래 남았다.

아이 한 명을 포기하지 않던 모습

그리고 마지막에는 또 하나 잊히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마이크의 딸 켈리가 자신이 돌보던 어린 남자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무너지는 건물 바로 앞에 놓이게 된다.

건물은 이미 폭파됐고 거대한 건물이 두 아이 쪽으로 쓰러지고 있다.

마이크는 딸과 아이를 구하기 위해 달려간다.

결국 세 사람은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살아 나온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당시 꽤 강한 인상을 받았다.

도시 전체가 위험하고 수많은 사람을 살려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위험에 처한 아이 한 명을 ‘어쩔 수 없다’며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 영화를 보던 나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저기는 저렇게 한 사람의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물론 영화 속 이야기이고, 그것만으로 어느 나라의 사회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살아온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지금보다는 ‘대를 위해 소가 희생될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에서 한 사람, 그것도 어린아이 한 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내게는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지금은 우리 사회도 많이 달라졌다.

재난이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한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바라보는 기준도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그래서 지금 다시 본다면 같은 장면을 보면서도 그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볼케이노》에서 내가 기억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볼케이노》는 분명 화산 재난영화다.

LA 한복판을 흐르는 용암도 나오고, 화산재가 도시를 뒤덮고, 거대한 건물을 폭파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이상하게도 사람들이다.

기관사를 살리고 자신은 희생한 사람.

움직이지 못하는 동료를 혼자 남겨두지 않고 함께 마지막을 맞은 사람.

그리고 위험에 처한 어린아이 한 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

재난영화를 많이 보다 보면 어떤 영화는 화려한 장면만 기억에 남고, 어떤 영화는 그 속에서 사람들이 했던 선택이 기억에 남는다.

내게 《볼케이노》는 후자에 가까운 영화다.

그리고 지금 다시 그 장면들을 떠올려봐도 같은 질문이 남는다.

‘나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FAQ

Q. 영화 《볼케이노》는 언제 개봉했나?

1997년에 개봉한 미국 재난영화다. 믹 잭슨이 감독했으며 토미 리 존스와 앤 헤이시 등이 출연했다.

Q. 《볼케이노》의 배경은 어디인가?

미국 로스앤젤레스다. 영화에서는 LA 도심 지하에서 화산 활동이 시작되면서 용암이 도심으로 흘러나오는 상황을 그린다.

Q. 토미 리 존스는 어떤 역할로 나오나?

로스앤젤레스 비상관리국 책임자 마이크 로크 역을 맡았다. 재난 현장에서 사람들을 지휘하며 용암의 흐름을 막기 위한 방법을 찾아간다.

Q. 마지막에 왜 건물을 폭파하나?

병원 쪽으로 향하는 용암의 흐름을 막고 방향을 바꾸기 위해 22층 건물을 무너뜨린다. 무너진 건물을 이용해 용암을 배수로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작전이었다.

Q. 《볼케이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는 회색 화산재가 도시 전체를 뒤덮던 모습과 마지막까지 사람을 포기하지 않던 장면들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